인간극장, 낙지와 함께 꿈을

2019년07월15일

낙지를 잡으며 삶을 일구는 상기 씨,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반려동물뉴스(CABN)) 전라남도 무안군의 바다에는 해보다 먼저 뜨는 빛이 있다. 바로 7년 전 고향인 무안으로 귀어한 이상기 씨(37)의 낙지잡이 배다. 그 뒤에는 언제나 또 다른 불빛이 따른다. 상기 씨의 부모님인 이덕용(71), 최부진(68) 부부다. 30년 경력의 베테랑 낙지잡이 부부는 아들이 혹여 위험하지는 않을까, 등대처럼 노심초사하며 그 뒤를 지킨다. 함께 어둠을 헤치며 낙지를 잡는 이들은 서로 힘이 되는 동업자이자, 가르치고 배우는 사제관계다.

동네에서 낙지 많이 잡기로는 1등인 상기 씨. 덕분에 1년 중 6개월은 ‘낙지 왕’으로 지내고, 남은 6개월은 농사와 생선가게에 매진한다. 목포 동부시장에 위치한 생선가게는 형제들과 처가 식구들이 모여서 운영 중인 곳. 모두 상기 씨의 끈질긴 설득으로 모여든 사람들이다. 이곳에서 상기 씨는 어판장에서 직접 사 온 생선을 손질한다. 짬이 나면 부모님의 양파밭으로 달려가 일손을 돕고, 아직 아무것도 안 심은 밭으로 가서 어떤 농사를 지을지 구상한다. 이렇게 바쁜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서울에서 시집온 귀한 아내 양수진 씨(35)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 윤설(3), 아들 서우(4개월)가 반겨온다.

이처럼 남 부러울 것 없이 지내는 상기 씨도, 처음 귀어를 결정하고 바다에 내려왔을 때는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히며 불안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한평생 낙지잡이와 갖은 농사로 억척스레 삶을 일궈온 부모님. 8년간 안정적으로 잘 다니던 조선소를 그만두고 굳이 바닷일을 하겠다는 막내아들 상기 씨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바다란, 자식들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나갔던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상기 씨에게 모진 말로 반대하며 고무대야만한 배를 던져줬다. 그 정도 크기의 배 갖고는 바다에 못 나갈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상기 씨는 처음 나간 바다가 너무 재미있었다. 배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 그즈음, 아버지 덕용 씨가 갑작스레 청천벽력같은 위암 선고를 받았다. 상기 씨는 투병 중인 아버지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자연스럽게 낙지 배를 타게 되었고, 차츰 자리를 잡아갔다.

어느새 7년이 지난 지금, 상기 씨는 한 집안의 어엿한 가장이자 복덩이 같은 아들이다. 객지에 뿔뿔이 흩어져 살던 형제들을 불러들였고, 한적했던 고향 동네를 북적거리게 했다. 특히 야무진 서울 며느리 수진 씨는 가족을 결집하는 1등 공신! 덕분에 부진 씨와 덕용 씨는 계획에도 없던 리마인드 웨딩까지 하게 됐다. 한편, 상기 씨의 직업병인 어깨 통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고된 뱃일에 어깨의 힘줄이 닳은 것. 결국 대학병원까지 가게 된 상기 씨.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아내 수진 씨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져만 가고...

다행인지 곧 금어기가 다가온다. 상기 씨는 금어기를 목전에 두고 마지막 낙지잡이에 나선다. 고독하게 물때를 기다리며 핸드폰으로 아이들 사진을 보다 보면,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차오른다. 어린 시절, 밤마다 낙지를 잡느라 얼굴 한 번 보기 어려웠던 부모님. 냉정하게 바다로 나가던 그 뒷모습이 실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어떤 물살이 덮쳐와도 흔들리지 않던 아버지의 눈빛처럼, 상기 씨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최경선 기자 choi54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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